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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이스라엘의 애굽 이주 <하나님의 계획>
2. 가나안 땅의 변화와 하나님의 보호 방법
3. 하나님의 침묵 속 임재 <430년의 기다림>
4. 믿음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때
이스라엘의 애굽 이주 <하나님의 계획>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 이주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창세기 41장을 보면, 야곱이 살았던 당시 가나안과 온 땅에 심각한 기근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심각한 기근이 가나안과 애굽 온 땅에 들었죠.
그래서 야곱은 창세기 46장에서 그의 가족 70명을 이끌고 당시 유일하게 음식이 있었던 애굽으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110세에 죽음으로 창세기는 끝이 납니다.
창세기 50장 26절
"요셉이 110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어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세기는 요셉이 110세에 죽음으로 끝이 나요.
그리고 다음이 출애굽기 1장 1절입니다.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창세기의 제일 마지막 구절인 창세기 50장 26절과 그 다음 책인 출애굽기 1장 1절 첫 번째 구절은 그냥 쭉 연결이 되어 한 권처럼 내용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기억하셔야 할 것은 이 짧은 두 절 사이의 내용이 연결되지만 이 두 절 사이의 시간적 배경은 누구도 느끼지 못하지만 약 430년이에요.
마치 어제 일어난 일 같아요. 내용이 연결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두 절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무려 430년이에요. 어마어마한 시간이죠.
하지만 성경은 이 430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430년 동안 어떤 사람이 태어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침묵합니다. 4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났겠습니까? 얼마나 중요한 일, 의미 있는 일이 이 기간 동안에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 태어났고 또 죽었겠습니까? 성경은 이 430년에 대해서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아요. 성경은 침묵합니다.
왜일까요?
이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이주하여 살다가 노예가 돼요. 처참한 삶을 삽니다. 비참한 삶을 삽니다. 애굽 사람들의 온갖 학대와 착취, 인간 이하의 짐승 같은 삶을 살게 돼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얼마나 부르짖었겠습니까? 울면서 얼마나 부르짖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가나안 땅의 변화와 하나님의 보호 방법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보내셨을까요?
이를 위해 가나안 땅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가나안 하면 항상 일곱 족속을 말합니다. 아마 성경을 조금 공부하신 분들은 "가나안은 몇 족속인가?"라고 물으면 그냥 버릇처럼 "가나안 일곱 족속"이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즉 모세와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땅에 살던 족속이 일곱 족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헷 족속입니다.
두 번째는 히위 족속입니다.
세 번째는 그 유명한 가나안 족속이요.
네 번째는 아모리 족속,
다섯 번째는 여부스 족속,
여섯 번째는 브리스 족속,
일곱 번째는 기르가스 족속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가나안 땅에 살았던 족속은 모두 이 일곱 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나안 땅에는 수백 년 동안 일곱 족속만 살았던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특히 야곱에게 "내가 너에게 가나안 땅을 줄 거야"라고 약속하셨을 때, 그때 가나안에는 일곱 족속이 아니고, 모두 다섯 족속이 살았습니다.
첫 번째는 엠 족속이요. 혹은 성경에 에민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두 번째는 호리 족속입니다. 이 족속은 세일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세 번째는 르바 불리워요. 혹은 성경에 르바임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아낙 족속이요.
다섯 번째는 수스 족속인데, 수수 족속은 삼수밈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았을 당시 가나안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엠, 호리, 르바, 아낙, 수스, 이렇게 다섯 부족이 가나안에 살고 있었어요.
여기서 엠이라는 족속은 진짜 족속 이름이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고대 근동 언어로 보면 '엠'이라는 단어의 뜻은 '두려움'이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진짜 족속 이름이 아니라 주변 나라에서 이 족속을 그렇게 불렀어요. "이거 두려워, 이거 두려워." 왜냐하면 기록에 의하면 이 족속은 한번 전쟁에서 이기면 전쟁에서 패한 부족을 완전히 진멸시킵니다. 다 죽여 버려요. 그니까 굉장히 무서운 이 족속과 전쟁할 때는 각오해야 돼요. 반드시 이겨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몰살당합니다. 또 수스 족속, 아낙 족속도 같은 굉장히 잔인한 거인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았을 당시에 가나안에는 이렇게 다섯 족속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다섯 족속이 430년이 지나는 동안에 일곱 족속이 되는데 이 다섯 족속이 그냥 일곱 족속이 되는 게 아니라 고대근동의 역사를 보시면 이 다섯 족속이 합쳐져서 세 족속이 됐다가 여덟 족속이 됐다가 열 족속이 됐다가 아홉 족속이 됐다가 다시 다섯 족속이 됐다가 세 족속이 됐다가 계속 반복하고 반복하고 합쳐졌다 나눠졌다 합쳐졌다 나눠졌다 그게 반복되면서 430년 만에 이 일곱 족속이 된 것입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부족은 어디도 없습니다. 계속 싸워요. 계속 전쟁하며 합쳐요. 진멸시켜요. 다른 데에서 또 와요. 그러다 진멸되고 또 합쳐지고 또 나눠져요. 또 합쳐지고 또 나눠져요. 그러면서 일곱 족속이 되는데 사실은 이 일곱 족속은 이름만 다를 뿐이지 수많은 전쟁을 통해 혈통이 비슷해요. 문화가 비슷해요. 언어가 비슷해요. 모든 게 다 똑같습니다. 단지 이름만 다를 뿐이지요.
하나님의 침묵 속 임재 <430년의 기다림>
이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보내셨는지 이해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이 야곱과 그의 가족 70명을 가나안에서 애굽 땅으로 옮기지 않고 그냥 430년 동안 가나안 땅에 머물게 하셨다면,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70명이 200만 명이 되는 동안 자신의 신앙과 믿음과 생각과 모든 것을 그대로 지킬 수 있었을까요?
못했을 것입니다. 강한 나라들과 합쳐지고 싸우고 나눠지고 합쳐지고 나눠지고, 무려 430년 동안 이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에 이스라엘은 반드시 자기들의 언어를 잃어버렸을 거예요. 정체성을 잃어버렸을 거예요. 신앙을 잃어버렸을 거예요. 계속 합쳐지면서 나중에 430년 됐을 때는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인지 가나안 백성인지 전혀 몰랐을 거예요.
그러므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그 가나안 땅에서 잘살고 있었던 야곱과 그 가족 70명을 빼내서 애굽에 넣으신 것이 실수였나요? 우연인가요? 심판인가요? 저주인가요?
아닙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지키고 계셨어요. 그들은 몰랐을 뿐이에요. "왜 하나님이 내가 잘 살던 가나안 고향을 떠나게 하십니까? 왜 알지 못하는 낯선 땅에 거하게 하십니까?" 원망했을 거예요. 네, 분명히 원망했어요. 그러나 아무도 몰랐어요. 그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다는 것을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그래, 그렇게 하나님이 가나안이 그렇게 변하니까, 수많은 전쟁과 다툼이 있으니까 그 가나안에서 야곱과 70명을 빼내서 애굽에 넣으셨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애굽 땅에서 70명이 200만 명 되게 했다 치자고요.
그런데 꼭, 꼭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학대를 받고 착취를 받았어야 했나요? 그 인간 이하의 비참한 삶을 꼭 그렇게 살았어야만 했는가? 좀 잘 살게 하시지 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그런 처참한 삶을 살게 하고 고난을 주시나?라는 질문이에요.
그러면 다시 한번 질문할테니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야곱이 그의 가족 70명을 이끌고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목축을 가증히 여기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증히 여겼더라." 애굽 사람들은 양 치고 소 치는 목축업을 하찮게 여겨요.
옛날 조선 시대 때 우리나라의 그 백정처럼요. 아주 하찮게, 인간쓰레기로 여깁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찮게 여겼어요. 가증히 여겼어요. 그래서 섞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너네는 너네끼리 저기 가서 살아라. 너네끼리 따로 살아라." 섞이지 않았어요.
반대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다면, 존귀히 여겼다면, 함께 같이 살고 싶어 했다면 430년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사는 그동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만일에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다면, 같이 살고 싶어 했다면, "내 딸을 저 아들과 결혼시키는 게 내 꿈이야"라고 생각했다면, 너무 존귀히 여겼다면,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사는 그 430년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은 어떻게 됐을까요?
430년이 지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고자 하셨을 때에 누가 이스라엘인지, 누가 애굽인지, 누가 가나안인지 절대 몰랐을 겁니다.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굽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지 못하게 하심으로 보호하고 계셨음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게 하심으로 그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셨음을 누가 감히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70명이 200만 명까지 되는 동안에 아무 일이 없었어요.
왜 하나님이 응답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왜 하나님이 대답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고 싶었죠.
그러나 대답하는 게 도와주는 게 아닌 것이에요. 호감을 받지 못하게 하심으로 오히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보호하고 계셨던 것이에요.
누가 감히 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므로 함부로 말하면 안 돼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어요. 외면하셨어. 내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아"라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는 것이에요. 아멘. 내 이해와 다를 뿐인 것이에요.
믿음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때
"하나님, 왜 내 자녀가 이렇게 아픔으로 오랫동안 있어야 됩니까? 왜 우리가 이렇게 외면당해야 됩니까?" 아니요, 외면당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보호하고 계셨던 것이에요. 아멘.
사랑받지 못하게 하심으로, 가증스럽게, 주변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게 함으로 말미암아, 아니요, 오히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존귀하게 지키고 보호하시고 계셨던 것이죠.
누가 감히 이것을 깨달아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내가 알지 못한다고 "아니야, 하나님이 나를 떠났어. 하나님이 나를 외면했어. 하나님이 나를 버렸어"라고 말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이 고난의 시간을 지나갈 때에,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갈 때에 반드시 필요한 게 뭐겠습니까?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신실하시다. 아멘.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아멘. 내 자녀를 지키신다. 내 남편과 우리 가정을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그 믿음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아멘.
로마서 4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자랑하세요. 로마서 4장에서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앞에, 온 우주 앞에 아브라함을 이렇게 자랑하십니다.
"얘들아,내 아브라함이 누군 줄 알아?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던 사람이야."
하나님도 아세요. "에이, 그건 못 바라지. 그거는 바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그 상황에서 누가 소망을 가질 수 있냐? 그 상황에서 누가 기대를 가지냐? 그 상황에서는 다 절망하는 거야. 인간이면 다 절망하는 거야. 다 포기하는 거야."
그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던 것이고, 기대할 수 없는 중에 기대했던 것입니다. 절망이 마땅한 삶에서 그때도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에요. 그러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존귀케 하십니다. 아멘.
그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랄 수 있는 믿음,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아멘.
신실하시다. 아멘.
지금 하나님이 내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역사하고 계신다. 일하고 계신다"라는 믿음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에요. 아멘.
그럼 도대체 하나님이 그 위험의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빼내서 애굽에 넣으시고, 그 애굽 사람들이 가증히 여기는 목축업을 하게 하심으로 학대 받게 하시고 하찮게 여기고 사랑받지 못하고 호감 받지 못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70명이 200만 명 될 때까지도 섞이지 않고 고스란히 그 신앙과 믿음을 지킬 수 있게 하나님이 그렇게 했다고 합시다.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에요.
그럼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
자기 백성이 그렇게 어려워하는데 하나님은 마실 나갔나?
놀러 나가셨나?
도대체 하나님 뭐 하셨나라는 것이에요. 그 답이 본문에 있습니다.
창세기 46장 3절까지 읽었죠. 46장 4절을 읽을테니까 여기 밑줄을 긋고, 그리고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창세기 46장 3절에서
"야곱아, 애굽에 내려가는 거 두려워하지 마. 내가 거기서 너를 큰 족속으로 이룰 거야"라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잘 들어보세요.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그러면 그 430년 기간 동안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요?
애굽에 함께 계셨어요. 아멘.
내가 못 느낄 뿐이에요. "왜 하나님, 나를 떠나십니까? 왜 하나님, 나를 외면하십니까? 왜 나를 버리십니까? 내가 당신 백성인데 내가 울부짖는데 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나를 떠나십니까?" 아니,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아멘.
"걱정하지 마. 내가 너와 함께 거기 간다." 아멘.
이스라엘, 그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게 착취 받을 때 거기 계셨어요. 그래서 같이 착취를 받으셨어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학대 받으실 때에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셨어요. 눈물 흘릴 때 그 자리에 같이 계셨어요. 같이 눈물 흘리고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셨어요. 아멘.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아멘.
하나님의 정확한 때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정확한 완벽한 때가 되었을 때에 드디어 하나님이 침묵을 깨십니다.
그리고 일어나세요. 그리고 권능의 손을 드셔서 그의 백성을 붙잡고 애굽에서 끌고 나오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정확한 때를 아세요. 아멘.
그리고 그때를 기다리십니다.
우리들은 몰라요. 우리는 그때를 몰라요. 그러나 기억하세요. 모든 만물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 3장 1절의 말씀처럼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어요."
하나님은 그 때를 정확히 아십니다. 그 정확한 때에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일하세요.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태중에서 열 달을 있다가 나와야 되는 것처럼요. 빨리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위험합니다. 다시 들어가야 돼요. 늦게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생명이 위험할 수 있어요. 가장 정확한 때가 가장 안전한 때예요
"하나님, 지금 하셔야 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지금 하셔야 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 서두르지 않으세요. 조급해하지 않으세요. 그때를 놓치지 않으세요. 정확한 때에 하나님은 정확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아멘.
"하나님, 내 때를 주께 드립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아멘.
하나님의 때까지 내가 인내하며 참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정확한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내 자녀에게 역사해 주시옵소서. 아멘. 고통 가운데 있는 내 남편에게, 내 아내에게, 내 부모님에게 하나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을 행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절대로 그의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아멘. 함께 하셔서 그 눈물 흘리고 고통받고 착취 받고 상처받는 그 자리에 하나님은 함께 계신 것이에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신 것이죠. 아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의 백성을 향한 사랑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와 그분의 계획을 신뢰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삶에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혹시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나요? 그럴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보고 계시고, 우리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계십니다. 그리고 정확한 때에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아브라함을 기억합시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던 그의 믿음을 본받읍시다. 우리도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로 이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끼고,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고난 중에도, 우리의 눈물 속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주시옵소서.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의 때를 주께 맡기오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시고, 많은 이들에게 소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더욱 깊이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이지웅 <굳이 애굽으로 보내셔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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