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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니에르병이란 무엇인가요?
메니에르병은 내이에 존재하는 내림프액이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내이 수종을 유발해 어지럼을 일으키는 병으로 40대 전후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여자에게 많으며 가족력도 10 - 20% 정도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이충만감과 이명, 청력 저하가 어지럼과 동반되어 나타난다면 의심할 수 있고 특히 2회 이상 20분 이상 지속되는 어지럼이 있고 청력검사에서 저음부의 청력 저하가 관찰된다면 메니에르병으로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하게 됩니다. 다만 어지럼과 함께 이충만감, 이명, 난청 같은 와우 증상을 동반하는 전형적인 메니에르병 외에도 비전형적인 형태로 어지럼 증상만 있는 경우 또는 청력 저하만을 반복적으로 호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번 발생하면 길게는 5~6년간 증상이 반복적으로 재발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이석증이나 전정신경염과 달리 메니에르병은 머리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저절로 어지럼증이 나타나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 메니에르병은 어떻게 진단하나요?

메니에르병만을 진단하기 위한 검사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지럽고 소리가 잘 안 들리고 귀가 먹먹해지고 이명이 있다면 임상적으로 의심하게 되고 여기에 청력검사, 전정기능 검사, 전기 와우 도검사 등이 진단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치료방법 : 메니에르병의 치료는 약물치료와 수술적 치료로 나뉠 수 있습니다.

1. 약물치료는 급성기에 어지럼, 오심, 구토 등을 억제하기 위하여 진정제, 진토제 증을 복용하며 가장 효과적인 약제는 이뇨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 혈관확장제, 스테로이드 등을 복용하며 이러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의 호전이 없으면 수술적 방법을 고려하게 됩니다. 그밖에 저염식 (하루 1g)의 식이요법과 술, 담배, 커피, 스트레스, 과로 등을 회피하고 충분한 수면으로 육체적 피로, 불면 등을 회피하는 보조요법을 함께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2. 약물적 치료가 실패할 경우 수술적 치료를 고려하게 되는데 청력이 나쁜 경우에는 고막을 통해 약물을 주입하여 전정신경을 파괴하거나 달팽이관 제거술을 시행할 수 있고 청력이 양호한 경우에는 내림프낭 감압술 등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 메니에르병은 다른 말초성 어지러움보다 치료 예후가 좋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며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청력장애 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주로 약물치료와 생활습관 관리가 병행되는데 약물로는 구토 억제제와 진정 억제제가 쓰이며 어지럼증이 생겼을 때 이를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저염식이 강조되기도 하는데 소금을 섭취하면 삼투압 현상으로 내림프액이 늘어 증상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저염식으로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을 때는 이뇨제를 복용해 수분 배출을 늘리기도 합니다. 이는 내림프액을 강제로 줄여 증상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 반 고흐와 메니에르병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어지럼증을 견디지 못해 귀를 자르면서 결국 37세에 자살했다는 사실에, 당시 의사가 내린 진단명은 뇌전증(Epilepsy)이었다. 그러나 1890년 7월 고흐가 앓았던 병은 뇌전증이 아니라 메니에르병(Meniere' disease)이었다는 것이 미국의 저명한 한 학술지에 실렸다. 그러나 1890년 7월 고흐가 앓았던 병은 뇌전증이 아니라 메니에르병(Meniere' disease)이었다는 것이 미국의 저명한 한 학술지에 실렸다.

메니에르병은 심한 어지러움과 이명, 난청을 유발하는 귀의 병이다. 반 고흐는 귀울림 증세의 메니에르병을 앓아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고통스러워했고 그것이 조울증으로 이어졌지만, 그 고통을 창조적으로 승화한 그의 작품들 덕분에 1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고흐는 네덜란드 화가로 근대 예술에서 인상주의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은 그의 인생 10년 동안 만들어진 것으로 인상파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다가, 1887년 6월 어느 화랑에서 우연히 본 일본 그림에 충격을 받아 색채는 점점 밝아지고, 양식도 완전히 변한다.

그 후 1888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프랑스 남부 아를에 작은 집을 빌려 노란색으로 칠하고 친구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과 함께 살면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자르며 정신발작을 일으킨다. 그후 1889년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 1890년 파리로 이사하면서 미술 애호가이며 정신신경과 의사인 가셰(Gachet)의 환자이자 친구가 된다. 가셰는 철도회사의 의사였는데 고흐에게 디기탈리스(Digitalis)로 조증(mania)이나 간질을 치료하고 있었다.

현재, 부정맥, 심부전 치료에 시용하는 디곡신(Digoxin)이 디기탈리스에서 유래된 약이지만, 당시에는 신경안정제, 항경련제, 조증 치료제 등 정신병 관련 질환 치료제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강심 배당체(Cardiac glycosides)인 디기탈리스제제는 빛이 없는 곳에서 가물가물하게 보임, 황시, 녹시, 복시 등 시각장애가 나타날 수 있고 어지러움, 두통, 방향감각 상실, 착란, 허약, 감정 둔화, 피로, 권태, 우울 등 정신신경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고흐는 디기탈리스의 과용으로 부작용에 시달렸을 것으로 예측하는데, 이는 그의 새로운 작품세계가 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다. 실제로 고흐가 고갱과 싸운 후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린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에서 소용돌이처럼 표현된 그림에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그가 죽을 때까지 이러한 표현이 이어지고 있다.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는 흔히 '까마귀가 있는 밀밭'(Wheat Field with Crows, 1890)을 주목했다. 이유는 그림에서 밀밭의 밀들은 정말 금빛으로 반짝이고 그 위로 날아가는 까마귀들은 불행한 화가들의 영혼을 먼 행성으로 데려가는데, 그들이 날아가는 하늘은 어두운데, 그곳에는 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밑 밭'(The Fields, 1980)이 더 늦게 그려진 것으로 평가됐는데. '밀밭'은 1,700만 파운드(약 317억 5,200만 원)를 호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그가 권총 자살을 하기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비극적 사연이 따라다니는 걸작이지만, 그가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느낌을 거의 느낄 수 없게 너무나 밝은데 이는 마지막으로 밝게 그리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

죽기 전까지 주변에서 피어나는 꽃을 그렸던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리볼버 권총으로 가슴을 쏜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왜 나는 제대로 하는 것이 없을까, 총 쏘는 것조차.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 있는 그 자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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