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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인식의 중요성

2. 상번제의 성경적 의미와 목적

3. 신앙의 세 가지 단계 <육에 속한 자, 육신에 속한 자, 영에 속한 자>

4.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키우는 방법

5. 교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는 가장 큰 장애물>

6.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단절의 회복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인식의 중요성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자신의 부족함을 진실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가난합니다. 하나님 저는 형편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너무 못났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신의 실체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행위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가난함과 형편없음을 "좋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하나님으로서 전부가 되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을 때, 하나님으로 인해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단순히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은 친밀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가까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한다면서 멀리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어떤 것으로 저희와 교제하고 싶으십니까?"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일상적인 교제와 소통을 구하는 것입니다.

 

상번제의 성경적 의미와 목적 

 

출애굽기 29장은 상번제(常燔祭, 매일 드리는 제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43절부터 46절에서 하나님은 상번제의 목적을 명확히 밝히십니다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니라. 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줄을 알게 될 것이니라." (출애굽기 29:43-46)

 

 상번제의 핵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셨을까요? 단순히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기 위함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창조의 목적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멀리 두기 위함이 아니라 가까이 있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은 창조의 마지막에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상번제는 1년 된 어린양을 드리는 제사였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매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습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관계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단발적인 만남이 아닌 지속적인 동행을 원하십니다.

 

교회의 역할은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이 타락해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타락하면 세상을 함께 끌어들여 무너뜨린다"라고 말합니다. 창세기에서도 인간의 범죄로 인해 이 세상이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와 신앙인들의 영적 건강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신앙의 세 가지 단계 <육에 속한 자, 육신에 속한 자, 영에 속한 자>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을 크게 세 부류로 구분합니다

1.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2. 무리들(따르지만 완전히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

3. 그리고 제자들(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세 가지 영적 상태를 설명합니다

1. 육에 속한 자,

2. 육신에 속한 자,

3. 그리고 영에 속한 자입니다.

이는 신앙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구분입니다.

 

◈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오직 자신의 뜻과 욕망,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따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영적으로는 사망으로 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했지만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이라고 부릅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린도전서 3:1)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이 공존하며 충돌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는 성장 과정의 일부이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영에 속한 자" 또는 "신령한 자"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모든 신앙인은 이러한 단계를 거쳐 성장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무리가 되고, 마침내 제자가 됩니다. 이는 육에 속한 자에서 육신에 속한 자를 거쳐 영에 속한 자로 성장하는 과정과 일치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키우는 방법 

 

친밀감이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할까요?

경험상,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피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일을 아홉 번 해도, 싫어하는 일을 한 번 하면 모든 좋은 일이 무효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면,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태도입니다. "나는 이해 못 하겠지만, 당신이 싫어한다니 주의하겠습니다"라는 태도가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듭니다.

 

이러한 존중의 태도는 성경에서 말하는 "경외"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단순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잠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행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반면,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원하십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이 관계가 깨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영성 회복의 본질입니다.

 

교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는 가장 큰 장애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일관되게 교만을 지적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악을 미워하느니라.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내가 미워하느니라." (잠언 8:13) 

 

하나님은 교만을 특별히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38:6에서는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 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신다."

 

하나님은 높이 계시지만, 자신을 낮추는 자를 돌보시고, 반면에 교만한 자는 멀리서도 한눈에 아십니다. 마치 우리가 시력이 나빠도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한눈에 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많은 예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교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과 벨사살의 이야기, 그리고 호세아서에서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다"는 구절 등은 교만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와 함께 넘어지리라." (호세아 5:5)

 

특히 주목할 점은, 사회의 타락과 무너짐이 교회의 타락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사회도 함께 무너진다는 성경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그가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싫어하는 것을 피해 주고 조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특히 교만을 피하고 자신을 낮출 때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https://07-happyhappypop.tistory.com/391

 

[복음]상한 심령과 영적 회복 <다윗의 회개 여정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ㅣ시편 51편

목차1. 상한 심령(Brokenness)의 의미와 가치2. 다윗의 회개 3. 진정한 회개의 깊이와 시간4. 회복의 여러 측면들5. 회개의 결과 6. 상한 심령에서 시작되는 영적 성장 오늘날 우리는 자신감과 성공,

07-happyhappypop.tistory.com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단절의 회복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외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죄의 궁극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심판의 장소였고,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 단절입니다.

 

죄의 본질은 끊어짐, 단절입니다. 죄에 대한 심판은 버려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저주입니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완전한 단절을 경험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없는 것 같고,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그것은 단절이 왔다는 신호입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단절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 단절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목 제물이 되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이사야 59:1-2에서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우리의 기도가 들리지 않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의를 힘입어,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매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상번제의 현대적 의미입니다. 매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분의 방법과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하심이 우리의 지각 위에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특히 교만)을 피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된 관계를 매일의 습관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 신앙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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