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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깨어진 세상과 우리의 현실
2. 잘못된 신앙의 위험성
3. 탄식하는 피조물과 그리스도인
4. 고난 속에서의 기도: 성령의 도우심
5. 크리스천의 고난과 영광의 패턴
6. 우리의 신음에 공감하시는 예수님
깨어진 세상과 우리의 현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완전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하셨지만, 죄로 인해 이 질서는 깨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자신을 잘 관리하고 노력해도 고통과 어려움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에 대해 설명합니다.
잠언서에 따르면 어리석은 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질서를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는 영적, 육신적, 사회적, 도덕적, 정신적, 물리적, 과학적 질서가 존재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 질서를 존중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이를 무시합니다.
둘째,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자기 관리를 잘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세상은 완전히 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욥의 세 친구가 범한 오류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질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세상이 타락했다는 사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바르게만 살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였습니다.
잘못된 신앙의 위험성
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앙에 대해 위험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힘들지만, 주님께서 반드시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다"라는 확신은 매우 귀하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이 없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정확히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업이 번창하게 하지 않으실 수도 있고, 우리의 병을 고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로마서 8:24-25)
이러한 이해 없이 '내가 이렇게 믿어 드렸는데 왜 응답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빠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거래 관계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계약을 맺으신 분이지만, 그 계약은 우리가 바라는 방식으로 정확히 이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생각하시는 최선의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탄식하는 피조물과 그리스도인
로마서 8장에서는 '스테나조'(στενάζω)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이 단어는 우리말로 '탄식'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원어적 의미는 '신음하다', '갈급함과 말할 수 없는 아픔 속에서 몸부림칠 때 내는 소리'입니다. 이는 단순한 탄식이 아니라, 죽음 앞에 선 사람의 신음 소리를 의미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로마서 8:22-23)
성경은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해산의 고통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은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며,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해산의 고통의 시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8)
영어 번역에서는 이를 "the beginning of birth pains"(해산의 고통의 시작)이라고 표현합니다. 해산의 고통은 갑자기 시작되는 것과 같습니다.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1900년도에 비해 2000년대에 들어서 자연재해의 피해가 약 9,000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는 해산의 고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고난 속에서의 기도: 성령의 도우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미 깨어져 있고, 우리도 탄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원을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 자원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기도의 첫 번째 목적은
응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격동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로서 기도할 때, 우리의 아픔은 하나님의 사랑을 자극합니다. 마치 아픈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로마서 8:15-16)
기도의 두 번째 목적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완성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종종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우리의 기도는 성령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정하여 전달해 주십니다.
크리스천의 고난과 영광의 패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번째 자원은 '패턴'입니다. 고난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첫째, 고난은 우리가 크리스천이라는 표징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한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로마서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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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상한 심령과 영적 회복 <다윗의 회개 여정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ㅣ시편 51편
목차1. 상한 심령(Brokenness)의 의미와 가치2. 다윗의 회개 3. 진정한 회개의 깊이와 시간4. 회복의 여러 측면들5. 회개의 결과 6. 상한 심령에서 시작되는 영적 성장 오늘날 우리는 자신감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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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고난에는 공식이 있습니다. 고난이 있으면 영광이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의 패턴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 보면, 그분은 극심한 고난을 당하셨지만, 그 후에 부활과 영광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본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세 번째 자원은 '관점'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고난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고난 후에 올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평가하는 기준은 지금 얼마나 힘든가 가 아니라,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팠던 시절을 갑절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신음에 공감하시는 예수님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가장 큰 확신을 주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시고 공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막막한지를 하나님께서 아실까 의문이 들 때,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실 때, 그분은 탄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마가복음 7:33-34)
더 나아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는 시편 22편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편 22:1)
예수님은 죄와 악과의 싸움에서 부상당하여 죽어가신 용사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근본적인 죄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신음하셨을 때, 아무도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고독함과 버려진 느낌, 그리고 신음을 완전히 이해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신음하는 현장에서도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탄식이 들리는 곳에 오셔서 손을 잡아주시며 "너는 내 아들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십니다.
고난과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인 기도, 고난의 패턴, 그리고 새로운 관점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신음에 공감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다니엘 김 <신음 속에 다가오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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