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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골로새서 3장 12~17절
2. 하나님의 속성 3가지
3. 반석 위에 지은 집/ 모래 위에 지은 집
4.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나라 먼저 구하기
5.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의 중요성
6.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
골로새서 3장 12~17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돼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여러분께 하나님 나라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임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오늘 이곳에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가 당신이 선택하고 부르신 이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은 수많은 긴장감, 초조함,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최근 산불이 났을 때 제가 아는 목사님이 안동에 계셨습니다. 교회가 산에 있어 성도님들의 집과 일터가 다 불타서 교회로 피신을 온 상황이었습니다. 내 뒤에서 불이 오는데 그 불이 어느 쪽 방향에서 어떻게 올지 모르는 상황.
내가 앞을 향하여 도망가는데 앞에서도 불이 올 수 있는 상황... 이것이 우리 삶의 현실입니다.
이 땅에서 주어지는 평안, 평강, 안정, 샬롬은 잠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하는 그분의 나라는 그 평안과 샬롬 안정감이 영원 영원히 지속되는 곳입니다. 이 평강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제가 예배 때 긴장감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안정감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내 분수를 지키는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그가 주시는 안정감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안정감이 필요한 삶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랄 때, 그의 안으로 들어갈 때, 그와 함께하는 안정감이 우리 삶 속에 경험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평화, 평강, 샬롬이 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평화의 주',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은 화목 제물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지속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입니다. 그 평화가 우리 하루의 시작에서 끝까지 우리를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15>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로 오는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몸, 삶을 실제적으로 이끌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치열하게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땅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흙'입니다. 이 흙 자체는 안정감을 필요로 합니다. 본질적으로 평안과 안정감을 우리는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주의 임재가 가까이 오면 제일 먼저 오는 것이 평안과 안정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평안한 안정감을 갈망합니다.
이 한 주간 하나님 우리의 모든 직장, 가정, 삶 모든 순간들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하지 않는 그 선택과 모든 결정,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은 하지 맙시다. 반석 위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기초로 해서 그 안에서 평강, 샬롬인 상태에서 선택하고 결정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속성 3가지
교회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데 우리가 주님을 본다면 주님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이 교회에서 주님과 함께 발걸음을 걸어가지 않았더라면 저도 제가 생각하는 '사랑의 하나님'을 만들고 그 안에 갇혀 살았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나는 내가 시작한 걸 책임지는 하나님이란다. 그게 바로 사랑이란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오해가 너무 큽니다. 언제 알게 되는지 아십니까? 결혼해야 알게 됩니다. 저도 결혼하면서 알았습니다.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무서운 것이구나... 사랑의 본질을 향해 가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언제까지 알아가야 할까요? 당신이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사랑이 이런 거구나"라고 깨달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치우쳐 있어요. '사랑의 하나님'만 강조하지요.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으신 분입니다.
보통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각자 가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 맞을까요? 우리가 부름을 입기 전까지만 맞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를 부르시기 전까지는 맞습니다. 그게 내 기준에서 내 경험과 내 옳은 소신과 신념, 맞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교회로, 당신의 지체로 부르신 이후부터는 이제 달라집니다. 이제 옳은 것은 당신이 옳다고 하는 것이 내 옳은 것이 되어야 하고, 당신이 틀리다고 하는 것이 내 틀린 것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이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틀린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 교회 안에서 무너지면 교회는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1~2>
여러분은 주의 양입니다. 주님이 목자이십니다. 이 시는 다윗이 지었지만, 당신이 목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린양같이 있을 때 나온 시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3>
우리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인지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오직 나, 나를 위해서" 살지만 미안하게도 하나님이 먼저 계셨고 그 영원한 하나님에 의해 우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바른 길로, 우리가 꼭 완주해야 하는 그 길들로 인도하십니다. 안전한 길들로 인도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23:4>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순간에 처해 있더라도 내 목자는 날 아시고 그 자리에 나와 즉시로 함께해 주실 수 있는 내 목자이십니다.
그 목자가 나를 향하여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시며, 당신만의 방법과 당신만의 방식으로 그 양을 당신이 원하시는 목적지까지 끝까지 가게 하십니다.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 모든 하나님에 대해서 어디에 들어 있을까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제가 말씀드린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말씀과 사랑의 말씀과 의의 말씀이 들어 있는데, 교회는 이 본질의 말씀에서 때론 치우치고 훼손합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요, 두려운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의 법을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마지막 날까지 바르게 세워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의와 공의의 말씀이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날까지 훼손하지 않고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경외할 수 있는 교회로 가기를 소망합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 모래 위에 지은 집
마태복음 7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집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의 건축법에는 건물이나 집의 기초를 놓을 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돌이 있습니다. 이를 '머릿돌'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건축 방식과는 조금 다르지요.
이스라엘에서는 큰 돌, 기초석을 넣어야 합니다. 모퉁이에, 코너에 모퉁이의 머릿돌을 두고, 그 돌을 기준점으로 해서 집 전체의 기준을 잡고 하나씩 하나씩 돌을 놓고 벽돌을 쌓아 올립니다. 이 돌을 잘못 놓으면 집 전체가 기울어집니다. 집 전체가 무너져 내립니다.
제가 어릴 때 교회를 지을 때 일을 했었는데, 벽돌을 놓는 '조적공사'를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벽돌 한 장 한 장을 놓을 때마다 실을 놓고 수평을 잡아 어긋나지 않도록 합니다. 그래서 모퉁이에 머릿돌을 잘못 놓은 집은 반석 위에 짓는 집이 아니라 모래 위에 짓는 집이 되어버립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단단하고 완벽한 돌, 꼭 필요한 돌, 없어서는 안 되는 기초석을 가지고 모퉁이에 돌을 세워야 그 건물이 안정적으로 세워져 완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집을 짓는 이들이 때로는 "이건 아닌 것 같다"라고 하면서 그 돌을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버렸는데, "이건 쓸모없는 돌이다"라고 버렸는데, 그 돌이 진짜 이 집을 지을 때 꼭 필요한 돌이라면서 다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건축자들이 버린 돌과 같았다"라고 했습니다. 가치 없어 보여서, 쓸모없어 보여서, "이건 아니다" 해서 그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여겼던 것처럼,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버렸습니다. 그를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집을 지을 때 가장 기초를 삼는 첫 번째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바로 "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를 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집을 지어야 하는데 모퉁이의 머릿돌을 가지고 우리도 집을 지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나라 먼저 구하기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은 처절했습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지요. 아마 우리가 그 시대로 옮겨간다면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일제 시대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을까요? 의식주였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한 끼 먹었는데 그다음에 먹을 끼니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생존이 문제였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라고 하셨습니다. 새들이 거두지도 않고 심지도 않는데도 하나님께서 먹이십니다. 들의 꽃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는데도 하나님이 입히십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정말 중요한 것을 붙들면 나머지는 예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가 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어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중요한 것을 붙들어야 우리의 의지가 풀리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
예전에는 예수님이 두 번째였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먼저 해결되면 그다음에 예수님이었습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장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초를 놓고 든든하게 집을 지어가면, 우리의 분량과 분수만큼, 우리가 성장하는 것만큼 하나님이 우리를 대우해 주시는 것들이 달라집니다.
모퉁이의 머릿돌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나는 모퉁이의 머릿돌이란다. 집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없어서는 안 될 모퉁이의 머릿돌이다." 이것은 단순히 알려주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과도 같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건기와 우기가 있습니다. 건기 때는 땅이 너무 단단해 보입니다. "아, 이 땅 굉장히 단단한 땅이구나. 여기다 건축하면 너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우기가 오면 홍수가 납니다.
이스라엘에는 골짜기가 많습니다. 비가 한 번 오면 적게 오는 것이 아니라 많이 쏟아집니다. 건기 때 보니까 마른땅, 좋은 땅, 튼튼한 땅처럼 보였는데, 우기를 만나 빗물이 쏟아지고 쏟아지니까 땅이 붕괴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건축자들은 단단한 암반석까지, 거기까지 깊이 땅을 파고 내려가서 거기에다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착각할 수 있습니다. 깊이 팠는데 "아이고, 이거 속았구나. 큰일 날 뻔했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다 집의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시작해서 모퉁이의 머릿돌로 마쳐야 할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의 집을 짓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어떤 폭풍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의 중요성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저는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이 중요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질문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많이 해보시길 권면합니다. 한 주간 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많이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안 해보고 해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해보니까 어떤지 아십니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면 바로바로 바뀌냐고요? 죄송합니다, 바로바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바뀝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거입니다.
한 번은 제가 주일 설교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 주일날 못 서겠어요"라고 했더니 담임 목사님이 "왜 그러세요? 알았어요, 제가 할게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심하고 있었는데, 토요일이 지나고 주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저에게 임하시는지, 하나님의 방법과 방식을 제가 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면 여러분은 놀라실 것입니다. 제가 여기 서 있는 것은 그의 나라의 돌봄과 관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방법과 방식을 제가 존중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책임져 줄게, 책임져 줄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 주간 여러분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구하면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구하는 것입니다. 구하지 않고서 책임져 준다는 것을 믿지 마십시오. 구했을 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입을 열어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서 순종하지 못하면 복종으로라도 나아가서 이 말씀이 진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할 때, "난 구했습니다. 책임은 하나님이 지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결말에서 나쁜 열매를 맺게 했는지, 좋은 열매를 맺게 했는지 열매가 우리에게 증거가 될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를 구하십시오. 나를 불안하게 하고, 초조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짜 중요한 것을 먼저 붙들어야 합니다.
이 중요한 것이 여러분의 기초석이 되지 않는다면 내려놓으십시오. 관계도, 선택과 결정도 내려놓으십시오. 어떤 것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붙들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안정감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뜻,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때,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이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야"라고 하시는 그 길로만 우리가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이 질문으로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다스리고 순복 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가야 할까요? 좁은 길, 의의 길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나라를 구하고, 우리의 목자가 우리를 책임져 주시고 관리해 주셔서 완주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을 은혜로 받았으니, 우리는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이 모퉁이의 머릿돌에 맞춰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한 주간 진짜 중요한 것을 먼저 붙들게 하시고, 나머지는 책임져 주신다 하신 그 주님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일 수 있게 되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이 확장되고 커갑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이 한 주간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주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십시오. 말씀 앞에서 주님과 함께 같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과 안정감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선물입니다. 이 안정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
한 주간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 서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체들을 통하여 연약한 지체들을 세우시고, 머리 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길로 연결되도록 부르십니다.
하나를 완성해 가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쪽 팔은 무너지는데 한쪽 팔은 건강하다면, 온몸이 고통을 받습니다. 우리 안에서 함께 기도해야 될 지체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족들 중에 자신의 의식주와 같이 '이것이 전부인 것처럼', '이것 때문에' 끊임없이 침몰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까? 나약해져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기도로 출발하고 그들을 일으키십시오. 하나님이 그 기도와 함께해 주셔서 이 한 주간 그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할 그들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이 예배가 끝나면 여러분들이 나아가는 그 삶 속에서 주님의 평강과 함께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 연약한 지체들에게 주님께서 건져 일으켜 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그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가 꼭 기도해야 할 그 지체들을 위해 예수님 이름으로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그의 왕과 그의 백성들이 함께 하나를 이루는 진리의 말씀으로 통치와 돌봄과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잘해서 이곳에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의 지체들과 더불어 하나를 이루게 하심으로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지향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와 그 사랑을 알기 위해 기도합니다.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의 돌봄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할 이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마음과 생각과 삶의 온 영혼과 육체에 임하여 주시어서 주님의 나라를 붙들고 일어서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그 돌봄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의 가정과 직장과 삶을 책임져 주시는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여드릴 수 있도록 복 주시옵소서.
이 한 주간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나라,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도록 복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그 복이 우리에게서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흘러갈 수 있도록 우리가 제사장의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들을 일으켜 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 또한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평안한 안정감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다시 웃을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다시 웃는 날 참 기쁨을 얻는 날을 볼 수 있도록 복 주시옵소서.
우리 지체들을 통하여 이들이 나아가는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진리를 통하여 제사장 직분의 분수에 맞는 삶, 그에게 할당된 기도로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으키는 주높인 지체들이 될 수 있도록 복 주시옵소서.
진리의 성령께서 여기 있는 우리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허락하여 주시고, 그 말씀을 안고 우리의 소중한 이웃, 하나님이 보내주시고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며 전파하며 그 풍성함을 함께 먹고 마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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