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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진심에 대한 재해석 <베드로의 세 번의 질문>
2. 질그릇에 담긴 보배 <불완전함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3. 십자가의 역설 <실패와 죽음을 통한 승리>
4. 베드로의 변화 <자신감에서 철저한 의탁으로>
5. 감격을 넘어선 신앙 <현대 교회의 도전>
6. 바울의 고백 <오직 십자가만을 의지한 사도직>
관련 성경구절
- 요한복음 21:15-19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신 장면)
- 마태복음 16:13-23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교회 건설 약속)
- 고린도후서 4:7
(질그릇 같은 몸에 보배를 담으신다)
- 이사야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심)
- 고린도전서 2:1-5
(바울의 약함과 두려움 가운데 전한 십자가의 메시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인식의 중요성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자신의 부족함을 진실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가난합니다. 하나님 저는 형편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너무 못났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신의 실체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행위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가난함과 형편없음을 "좋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하나님으로서 전부가 되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을 때 하나님으로 인해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단순히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은 친밀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가까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한다면서 멀리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어떤 것으로 저희와 교제하고 싶으십니까?"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일상적인 교제와 소통을 구하는 것입니다.
'진심'에 대한 재해석 <베드로의 세 번의 질문>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 장면은 기독교 설교에서 자주 등장하며 일반적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에 대한 회복과 용서의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박영선 목사님은 이 질문의 핵심이 단순히 '사랑'이 아닌 '진심'에 있다고 재해석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너 그때 진심이었느냐?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진심이었느냐?"로 바꿔 읽으면 대화의 본질이 더 명확해집니다. 이 대화는 베드로의 실패를 부각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으나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면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한복음 21:18)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미래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순교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 대화의 핵심은 단순히 "너는 실패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마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네 실력으로는 갈 수 없는 길을 가게 될 것이니 네 모든 실력으로 일하려 들지 말고 내가 네 부족함 속에 영광을 담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한국 기독교 신앙에서 '진심'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진심이 순교로 나타났고, 부흥 시대에는 감격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 진심을 이어받아 일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진심'이라는 단어는 본질적으로 모호합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완성하기 위해 오셔서 이 일을 이루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에게 맡기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신앙생활 중에 막막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간구와 간절함을 표현해도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응답하시지 않아 신앙이 막막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종종 자신의 진심에 한 점의 티끌도 남지 않게 온전하고 순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방향과는 다릅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 <불완전함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기독교 신앙의 핵심 역설 중 하나는 고린도후서 4:7에서 발견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박영선 목사님은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통해 일하신다는 놀라운 진리를 강조합니다.
티끌 하나 없는 무흠 한 마음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백지상태가 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작품이 된 것도 아니고, 어떤 경험에 누적된 지혜나 분별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이미 걸립니다. 거짓말하지 않기, 의리를 지키기, 믿음을 지키기, 더 순전한 열심을 가지기 - 이 모든 것에 우리는 이미 붙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어디서나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그의 위대한 뜻과 권능과 내용과 과정을 담으십니다. 성경식 표현으로는 "질그릇 같은 몸에 보배를 담으신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베드로는 이 진리를 체현하는 완벽한 예시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 실패를 잊지 마라. 그러니 다음엔 잘해라"가 아니라 "네 실패가 일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 완벽해지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한계, 부족함, 자책 속에 하나님의 보배를 감추어 그분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우리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현대 기독교인들의 자기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많은 신자들이 스스로의 부족함에 괴로워하며 더 완벽한 신앙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박영선 목사님은 세상이 보기에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고, 예수를 믿는데도 보상을 받지 못하며, 마치 있으나 마나 하고 실패한 것 같은 길로 인도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길, 우리가 원하는 보상은 없을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십자가의 역설 <실패와 죽음을 통한 승리>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상징입니다. 거의 모든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십자가를 내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부활과 승리를 알고 있는 자로서 십자가를 바라보기 때문에 종종 그 본질적인 의미를 놓치곤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의 십자가는 승리가 아니라 수치와 치욕, 거짓과 배반, 기대를 저버리는 실패의 상징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예언하신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여전히 승리가 없는 것 같은 이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일반적인 기대와 충돌합니다. 우리는 승리해야 한다/ 세상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 자체는 맞지만 중요한 것은 그 승리의 본질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죽이는 것으로 하나님이 일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세상이 말하는 힘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교회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단순히 부활과 승리의 결론만을 담은 상징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이미 권력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법으로는 참된 신앙의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고 교회를 점검할 때 종종 '순도'를 확인합니다. "진심이 아직도 있는가?", "열정이 아직도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가 죽었어", "우리 교회는 사랑이 죽었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십자가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한국 교회는 부흥시대를 지나왔고, 그 부흥은 우리에게 감격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감격을 넘어가 살아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현대 삶에서도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감격, 아이를 낳는 감격 등 다양한 감격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격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짐과 책임이 되기도 합니다.
진정한 기쁨은 예수께서 자신의 생애를 기꺼이 십자가 앞에 내놓은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이루는 길을 가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세상에서는 표현할 수 없고 그려낼 수 없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당신과 믿음과 사랑을 나누고 하나가 되도록 부르시며,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협력자가 되자고 초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 자리에서 참된 기쁨이 시작됩니다.
베드로의 변화 <자신감에서 철저한 의탁으로>
베드로는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의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멋진 답변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응답하셨습니다. 또한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하시며 엄청난 권위를 베드로에게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예수님이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자, 베드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보호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그를 꾸짖으셨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의 기대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땅에서 매고 푸는 권세를 가진 교회의 기초로 선택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였습니다. 이는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잘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은 오히려 실패하고 넘어진 자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탄아"라고 불린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잘하는 일은 고사하고 주의 일을 방해하는 것 같은 나 같은 것은 예수 믿는 게 죄야, 나 같은 것은 태어난 게 죄야"라는 자책이 우리의 진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놀라운 메시지는 바로 그런 실패의 자리, 모든 것이 끝장났고 모든 것이 망한 것 같은 자리, 무덤에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이 부활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씻어내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됩니다. 대신 지금의 수준 그대로의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믿고 살게 됩니다. "보배를 내가 거기 심어 놨다, 걱정 마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게 됩니다.
감격을 넘어선 신앙 <현대 교회의 도전>
현대 교회 특히 한국 교회는 "교회가 부흥해야 한다", "승리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박영선 목사님은 이러한 표현이 우리가 "권력을 가져야 한다", "보상을 가져야 한다", "권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근거하기 때문에 나온다고 지적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모든 것을 교회에 일임하셨습니다. 그분이 이루신 일,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역사의 완성이 교회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는 괜찮았던 때가 거의 없습니다. 교회는 늘 잘못된 길로 가곤 했고, 그 잘못을 고치려 했지만 고친 후에도 또 다른 실수를 범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런 불완전한 교회를 통해 2000년 동안 일해오셨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십자가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이미 부활을 알고 있는 자로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는 이미 승리를 의미하지만 본래 십자가는 수치와 치욕, 배반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간극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흥시대를 지나온 한국 교회에서 '감격'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감격, 아이를 낳는 감격 등 인생에는 많은 감격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감격은 종종 짐과 책임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감격을 넘어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애를 십자가 앞에 내놓은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이루는 길을 가는 기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더 많은 수, 여론과 많은 사람의 공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조건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의 생애와 자신이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에 순종하는 기쁨과 영광을 아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바울의 고백 <오직 십자가만을 의지한 사도직>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에서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의 심정을 고백합니다. 그는 새로운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야 했지만, 그곳 사람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인류를 설득하지 못해 십자가에 죽은 것처럼 자신도 거부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더 큰 걱정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가 단순히 하나의 철학이나 훈계로 받아들여져 사람들이 이를 지적으로만 이해하고 자신들의 답으로 채택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만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 하나를 의지해서 들어갔다." 이는 십자가가 모두를 구원하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은 것이며, 동시에 복음을 전하는 자신도 십자가에 처형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처형당해도 거기에 부활이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알아들으면 함께 부활 생명을 기뻐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세상은 십자가와 예수와 복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바울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그것은 세상이 주는 보상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살아가야 합니다. 특별한 일을 해서 자신의 신앙이나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삶의 조건들 현실적 조건들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사야 53장에서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라고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이 오셨을 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아버지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를 찾지도 않았으며, 그가 왔을 때 알아보지도 못했고, 심지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알아볼 만큼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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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상번제의 의미와 중요성ㅣ부활신앙을 통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목차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인식의 중요성2. 상번제의 성경적 의미와 목적3. 신앙의 세 가지 단계 4.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키우는 방법5. 교만 6.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단절의 회
07-happyhappypop.tistory.com
이는 얼마나 기이하고 놀라운 방법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이 기적을 이해하고 살아내는 것이 참된 신앙의 삶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실패와 부족함 속에서도 아니 오히려 그 불완전함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베드로가 그랬듯이 바울이 그랬듯이 우리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만을 의지할 때 참된 신앙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나를 죽이는 것으로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박영선 목사님의 메시지 핵심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실패하고 무력해 보이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십자가가 그랬듯이 우리의 삶도 그렇게 부활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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