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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1절
창세기 1장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사람에게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깊은 관계를 갖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깊은 관계는 다른 말로 하면 깊은 신뢰입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난 믿어.”
네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아직 나한테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믿을 거야.
이런 관계를 갖고자 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깊은 관계를 맺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 그러니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한 건 사람은 양쪽을 다 알아야 깊은 관계를 갖지만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계십니다. (나의 상황과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나만 알면 됩니다.
“나는 너를 알고 있는데 네가 나를 모르니까 내가 너를 다 알려줄게.
나도 알고 너 자신도 알려줄게. 그런데 하나님만 알면 너 자신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왜냐하면 나는 빛이거든”
 
말씀의 빛이 조명해줘서 ‘너는 이렇다. 너는 이런 사람이다.’ 하는 너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의 성품과 인격을 배워 삶에서 경험하여 소화하는 삶이 되어야 그 관계가 날로 날로 좋아지게 됩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이적을 행하심을 보아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던 것은 자기 멋대로 보았고 자기 멋대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상황이나 자신 자체를 자기 멋대로 보고 해석 하면 주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깊은 신뢰의 관계를 하나님과 맺기 위해서 우리의 말씀의 빛 아래서 생각(묵상)’ 해야 합니다.

▶ 자, 그러면 무엇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까?

<말씀 묵상하기, 생각하기>

깊은 신뢰 관계가 형성 되려면 서로가 서로의 성품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깊은 관계(신뢰) = ‘생각하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목적과 계획이 있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창1:2)
나에게 라카프’ 하셨다.
 

① 혼돈
= 무질서한 거예요. 정확한 기준 아래서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이 기준 저 기준 질서가 없었다는 거죠. 
그가 생각하는 바를 보면 어지럽다는 거예요. 정리가 돼 있는 게 아니라 어수선하다는 겁니다.
 
② 공허
= 텅 비어 있다는 거죠.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라 텅 비어 있다. 그래서 고독하다. 공허하다. 헛헛하다.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먹어도 배가 고프고 누구를 만나도 외롭고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고 모든 것이 공허하다. 
아내나 자식이 있어도 혼자인 것 같고 무촌인 남편과 얘기해도 혼자 말하는 거 같고.
 
③ 흑암이 있다
= 빛이 조금도 없이 캄캄하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길과 방향을 모르고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는 거죠.

창세기 1장2절
창세기 1장2절

 왜? 전능하신 분이 ??

‘라카프’ 하셨다 하셨지??

① ‘창조, 만들다’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나뉘어 쓰입니다.
아싸 : 즉흥적으로 목적과 의지를 가지지 않고 만든 것.
바라 : 구체적인 주어가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만든 것.
 
② 전능자 : 무엇을 해도 완벽하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선택과 결정에 있어 실수가 없다는 뜻이요 후회할 일이 없는 선택을 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③ 라카프 : 한 지점을 중심으로 빙빙 돈다.
독수리가 먹이를 먹기 위하여 하늘에서 한 지점을 돌며 목표물을 향하여 방향과 거리를 잡는 것.
(닭이 알을 품고 부화되기까지 빙빙 돌리면서 품고 있는 모습)
 
★ (라카프에 대한 내용) ▶ ▶ https://07-happyhappypop.tistory.com/232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은 ‘바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목적과 의지를 두어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분이 ‘라카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분이 생각을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 분이 신중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십니다.
왜요??

한쪽면만 말하자면 “너를 위하여 라는 겁니다. 나와 관계를 맺어야 할 너 때문에.
너로 인하여 하나님이라는 전능자의 입장을 내려놓고 피조물인 네 입장에서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의 입장에서 헤아리시느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인간의 약함 진흙 한 덩어리로 빚어져 깨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람의 입장과 그의 성품, 성격, 삶이 어떤지 재어보시느라 생각하시는 겁니다.
왜요?
사랑하시니까요.
사랑은 공감하는 것이니까요.
하나님의 그 사랑에는 목적과 계획이 있었기에 신중하게 늘 나를 생각하십니다.
 

출애굽기 여정
출애굽기 여정

하나님은 말합니다.

“나는 목적이 있었어.”

너희를 400년이 지나도록 애굽에 두었다가 꺼내온 정확한 목적이 있었어.
너희는 지금 목적을 모르고 눈앞에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일이 있으면 그것에 대하여 능력 많잖아요?
해결해 줘요. 능력 많잖아요? 이렇게만 한다.
 
아니 나는 목적과 의지가 있었다니까..
노예 생활 언제 끝나요?라고 불평불만해서 살려달라고 막 부르짖음을 듣고 너희를 건져준 게 아니야.
바라하나님은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정확하게 바라 했단 말이야
내 편에서(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너희는 착각했어. ‘내가 기도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애굽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출하셨구나.’
NO! 주어가 하나님이야.
내가 너희를 향하여 목적이 있었고 의지가 있어서 내 편에서 간 거야.라고 말을 하는 거죠.

 말씀의 적용

우리도 뭔가를 결정해야 할 지점이 있잖아요?
신중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행위 아래서 신중함을 받기를 구하는 겁니다.
나 자체로는 신중할 수 없어요.
창세기를 열어보면서
“바라 하셨던 하나님!! 라카프 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 아래서 내게도 그 신중함이... 그 무거운 생각하심.
실 수 없는 그 생각하심이 나에게도 흘러와서 그 아래에서 내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게 하소서."
하고 묵상하는 겁니다.

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부서뜨리고 무너뜨리는 과정 중에 있으니까 기대함도 없고 소망도 꺾이고 육체는 자꾸만 늙어가고 어느 것 하나도 희망하고 기대야 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 과정 중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전능자가 나에게 반드시 목적과 정확한 의지를 가지고 나를 불렀음을 믿게 하소서. 하루를 살아가면서 나를 부르신 이 믿음이 더욱더 내 안에 굳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 내가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이것에 저 깊이떨어진 내 자존감을 올려주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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